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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기술과 윤리가 충돌하는 순간

by 심미안simmian 2025. 7. 12.

디지털 유산은 누구의 것일까요? AI로 복원된 유물, NFT화된 문화재, 메타버스 전시 속 소유권 논란까지. 기술과 윤리가 충돌하는 순간을 살펴봅니다.

 

 

고대 문서와 정의의 여신상이 함께 등장하는 디지털 유산 소유권 이슈 썸네일, '디지털 유산의 소유권은 누구의 것인가' 문구 포함

 

디지털 복원, 새로운 문화유산이 되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라진 유물이나 유적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3D 스캔, AI 분석, 메타버스 구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물이 사라진 문화유산을 가상공간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유산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기존에 없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과연 이 디지털 복제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복원에 사용된 원유물의 소유국일까, 복원 작업을 수행한 기술 기업일까, 아니면 그것을 감상하는 대중의 공동 자산일까? 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냈고, 문화유산은 이제 법과 윤리의 경계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다.

 

 

원본 유물의 소유국 vs 복원 주체의 권리

 

디지털 유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대표적인 논쟁은, 원본 유물을 보유한 국가와 디지털 복원을 수행한 기관 간의 권리 충돌이다. 예를 들어, 고대 유물의 디지털 복원이 서구의 대학이나 기업에 의해 이루어졌을 때, 해당 유물을 소유한 국가나 지역 공동체가 디지털 복제본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 정부는 루브르박물관이 파르테논 신전 조각을 디지털 전시용으로 스캔한 것에 대해 "디지털 소유권 역시 반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화 주권과 기술적 소유권이 충돌하는 사례로, 향후 국제 기준 마련이 요구되는 이슈다.

 

 

AI가 만든 복원물, 창작인가 복제인가

 

인공지능이 손상된 유물의 일부를 복원하거나, 고대 언어로 된 문장을 자동 생성해 완성시키는 기술이 확산되면서, AI가 생성한 디지털 유산의 창작물 여부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GPT 기반 모델이 고대 문서를 분석하여 문장을 '예측'해 채워 넣는다면, 그 결과물은 인간의 창작물일까, 아니면 데이터의 반복일까?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AI 생성 결과물에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반대로 기술 기업은 알고리즘의 설계와 가공 과정 자체를 창작 행위로 간주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AI 복원물이 법적으로 누구의 지적 자산인지에 대한 기준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NFT와 디지털 유산의 상업화 논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소유권 논쟁은 NFT(대체불가능토큰) 등장 이후 더욱 복잡해졌다. 복원된 유물의 3D 이미지나 영상이 NFT 형태로 발행되어 수익화되면서, 문화유산이 상업적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 프랑스 스타트업은 고대 로마 유물의 디지털 모델을 NFT로 판매해 논란이 되었고, 이탈리아 정부는 “국가 문화재의 디지털 복제품이 무단 상업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NFT는 소유권을 명확히 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디지털 문화유산이 누구에게 속하고,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윤리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메타버스 전시관 속 유물, 진품인가?

 

메타버스 속 박물관과 전시관에서는 복원된 유물들이 3D 이미지로 전시되며, 관람객은 아바타를 통해 이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디지털 유물들은 진품일까, 아니면 단순한 시각 자료일까? 더 나아가, 이 전시 공간에 대한 저작권과 접근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실제로 일부 플랫폼은 메타버스 전시관의 입장료를 유료로 운영하면서, 유물에 대한 ‘감상의 권리’를 민간 플랫폼이 독점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공공의 문화자산이 특정 기업의 수익 도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으며, 디지털 전시관의 소유·운영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주민 공동체와 문화 권리의 회복

 

디지털 유산의 소유권 문제는 단순히 법적 문제를 넘어서, 원주민 공동체의 문화 권리 회복과도 직결된다. 많은 고대 유물은 식민지 시기 수탈되었고, 지금은 원본 유물뿐만 아니라 그 복제물조차 해당 공동체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디지털 복원 작업 시 원주민 공동체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고, 디지털 콘텐츠의 소유 및 활용 권리를 공유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소유권을 넘어서, 디지털 문화유산의 ‘윤리적 주체’로 공동체를 인정하자는 흐름으로, 앞으로 국제 사회에서 더욱 주목받을 의제다.

 

 

공공 접근성과 기술 독점 사이의 균형

 

문화유산은 인류 전체의 자산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부 기업이나 기관이 유물 복원 데이터를 독점하거나, 특정 플랫폼에서만 공개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구조는 ‘기술을 가진 자만이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비대칭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세계디지털문화재연합(WDCHA)은 “디지털 유산은 공공재로 간주되어야 하며, 최소한의 접근권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기술 발전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는, 디지털 시대 문화유산 논의의 핵심이 되고 있다.

 

 

디지털 유산, 새로운 법과 윤리를 요구하다

 

결국 디지털 유산은 기술의 산물인 동시에, 새로운 법과 윤리를 요구하는 존재다. 단순히 파일을 소유하거나 공유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유산의 역사, 가치, 맥락까지 고려한 권리 설계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디지털 복원물에 대한 국제 공동 관리 체계, 공정한 수익 배분 모델, 투명한 저작권 시스템이 요구될 것이다. AI, 블록체인, 메타버스 같은 기술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전파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기술이 만든 새로운 경계와 책임을 분명히 설정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의 디지털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이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공유하고,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