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와의 금전거래, 법적 보호는 어디까지?

미성년자의 법적 행위능력은 어떻게 제한되는가?

우리 민법은 미성년자를 ‘제한능력자’로 분류한다. 이는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법률행위를 판단하고 책임질 능력이 부족하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민법 제5조 제1항은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한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미성년자가 부모나 후견인의 허락 없이 체결한 계약은 추후에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으며, 그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조항은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의 장치이지만, 금전거래의 상대방에게는 큰 리스크가 된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이 차용증을 작성하고 돈을 빌렸더라도, 이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계약을 무효화하면 돈을 돌려받기 어렵게 된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단540604 판결에서는 고등학생이 직접 작성한 차용증을 바탕으로 대여금 반환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피고가 미성년자이고, 계약 체결 당시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었으며, 원고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이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미성년자의 금전거래는 법적 형식이 아무리 갖춰졌더라도 실질 요건이 부족하면 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

 

차용증, 메시지, 이체 내역이 있어도 무효화될 수 있는 이유

금전거래에서 차용증이나 계좌이체 내역,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등이 존재하면 일반적으로 채권 회수가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미성년자와의 거래에서는 이러한 정황 증거가 충분하더라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으면 법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차용증은 단순히 '빌려줬다는 증거'이지, 미성년자와의 계약 유효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자가 그 계약을 취소하면, 법적으로는 ‘애초에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수원지방법원 2018가단56782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고는 차용증, 이체 내역, 문자 기록 등 명백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피고가 당시 미성년자였고, 부모의 동의가 없었음이 밝혀지자 법원은 “비록 차용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제한능력자인 피고의 의사표시에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청구를 기각했고, 원고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처럼 미성년자의 계약 취소권은 강력하게 보호되며, 사후에 아무리 명확한 증거가 있어도 이를 뒤집기 어렵다.

다만, 이러한 증거들은 계약의 유효성 판단과 별개로 ‘사실관계’ 증명에는 기여할 수 있다. 법정대리인의 추인 여부, 미성년자의 경제적 자립 가능성, 거래의 합리성 등을 판단하는 데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에, 기록은 반드시 남겨두는 것이 좋다.

 

미성년자와의 금전거래, 법적 보호는 어디까지?

 

예외적인 경우: 유효한 거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들

모든 미성년자와의 금전거래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법은 몇 가지 예외 조건을 인정하고 있으며, 아래와 같은 경우에는 계약이 유효하게 유지될 수 있다.

  1. 법정대리인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
  2. 거래 후 법정대리인이 별도로 승인(추인)
  3. 미성년자가 자신의 수입 내에서 합리적인 수준의 경제활동을 한 경우

서울서부지방법원 2020가단105362 판결에서는 학원비를 목적으로 돈을 빌린 수험생 미성년자에 대해, 부모가 대화 내용과 금전거래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정황을 근거로 법정대리인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대여금 반환을 명령했다. 이처럼 부모가 직접 서면 동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객관적 정황상 개입하거나 동의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계약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아르바이트 등으로 일정 소득이 있는 미성년자가 수입 내 합리적 범위 내에서 한 금전거래는 ‘자기 책임’ 원칙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거래 금액, 용도, 당사자의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기 때문에, 유효 판단은 매우 제한적이다. 결국 계약서 외에 ‘거래 환경 전체’를 입증해야 한다.

 

분쟁 예방과 대응 전략: 계약 전 체크리스트와 법적 절차

미성년자와의 금전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방이다. 아래는 실무적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다.

  •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통한 연령 확인
  • 법정대리인의 서면 동의서 확보 또는 통화·문자 등의 동의 정황 증거 수집
  • 차용증 작성 시 상환일, 이율, 지연 손해금 등 구체적 기재
  • 계좌이체 내역, 카카오톡 대화, 전화 녹취 전부 백업 보관

거래 후 분쟁이 발생했다면 내용증명을 통해 정식으로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 1차 조치다. 내용증명은 단순한 경고장이 아니라, 채권자 의사 표현이 기록된 공식 문서로, 이후 재판에서 중요한 입증 자료가 된다. 작성 시에는 금전거래일, 금액, 약속된 상환일, 상환 지연 사실, 법적 조치 예고 문구 등을 구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상환 상태가 지속되면 지급명령 신청 또는 민사소송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급명령은 정식 재판보다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들며, 채무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면 민사소송도 실익이 없을 수 있으며, 판결을 받아도 상대방이 미성년자인 경우 실제 회수 가능성은 낮다. 특히 무자력 상태의 피고에 대해 강제집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소송 전 전략적 판단이 필수다.

결국 핵심은 명확하다. 미성년자와 금전거래를 할 때는 ‘믿음’보다 ‘증거’, 감정보다 ‘법적 안전장치’를 우선시해야 한다. 계약 전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금전 손실은 물론 시간과 에너지 낭비까지 떠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