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 정리 vs 삭제, 생전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계정 정리와 삭제는 완전히 다른 선택입니다

디지털 유산을 준비할 때 많은 이들이 “죽으면 계정은 그냥 없어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계정은 일정 기간 후 자동으로 삭제되지만, 상당수는 일정한 조치 없이는 무기한으로 방치되거나, 제3자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사망 전 계정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가장 흔히 고민되는 선택지가 바로 ‘계정 정리’와 ‘계정 삭제’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차이가 아니라, 고인의 디지털 자산과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계정 정리는 데이터를 분류하고, 유족이 활용할 수 있게 구성한 뒤 넘기는 절차를 말한다. 반면 계정 삭제는 사후에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깔끔히 없애는 방식이다. 두 방법 모두 장단점이 있으며, 각 계정의 성격, 정보의 민감도, 가족과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어떤 계정은 남기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모든 계정을 삭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고인이 남긴 블로그에는 수십 편의 글과 창작물이 담겨 있을 수 있고, 유튜브 채널에는 조회수 기반 수익이 누적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콘텐츠는 단순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저작권, 수익, 사회적 신뢰도 등 다양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고인의 SNS에는 친구, 지인, 독자들과의 관계 맥락이 남아 있다. 이런 계정을 삭제하는 대신 ‘기념 계정’이나 ‘공개 범위 조정’ 형태로 보존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메일 계정에는 각종 금융정보, 업무 문서, 구독 서비스, 보험 등 고인의 일상과 재산 정보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보를 열람하지 못하면, 유족은 사후 처리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가치 있는 정보가 들어 있는 계정은 삭제보다 정리 후 이관이 실질적으로 더 유리하다. 특히 고인의 죽음 이후에도 정산이 필요한 수익 계정이나, 온라인 서비스의 유료 구독 결제 내역, 고인의 이름으로 개설된 업무용 협업 도구(슬랙, 노션 등)는 사후 자동 갱신이나 과금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모든 경우를 대비하려면 단순히 계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남길 계정은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유족이나 신뢰받는 제3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단, 정리 후 이관할 경우에는 ‘누구에게’ 넘기고, ‘어떻게’ 보호할지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

 

민감한 정보가 있는 계정은 삭제가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계정에 보안상 민감하거나 사적인 정보가 담겨 있다면 삭제가 가장 확실한 보호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애 대화, 일기 형식의 메모, 병원 예약 기록 등은 사망 후 공개될 경우 유족이나 제3자에게 불필요한 갈등이나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이런 계정들은 사망 시 자동 삭제되도록 설정하거나, 생전 직접 폐쇄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특히 SNS나 메신저의 대화 기록처럼 개인적인 정서가 깊이 담긴 데이터는, 남겨진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금융 관련 계정 중에서도 일시적으로 가입한 플랫폼, 중복된 가입 계정 등은 혼선만 초래할 수 있으므로, 미리 삭제하거나 목록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다. 디지털 유산 관리에서 '삭제'는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전략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무작정 다 지우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중요도와 민감도를 구분하여 선택하는 것이다.

계정 정리와 삭제 기준을 스스로 정해보세요

계정 정리와 삭제를 위한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기준표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정을 다음 네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1.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고 유족이 알아야 하는 계정
2. 창작물이나 자산이 있어 보존 가치가 있는 계정
3. 민감하거나 사적인 정보로 삭제가 필요한 계정
4.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계정

이 네 가지 분류에 따라 목록을 작성한 뒤, 각 항목에 대해 ‘삭제’, ‘이관’, ‘보존’ 등의 방침을 정리하면 된다. 이 기준은 디지털 유서(Digital Will)에 포함하거나, 별도로 암호화된 파일에 저장해 둘 수 있다. 또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주요 플랫폼의 사전 설정 기능을 활용하면 자동화된 계정 처리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구글의 계정 비활성화 관리자를 통해 특정 기간 활동이 없으면 자동 삭제되거나 유족에게 정보가 전달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정리냐 삭제냐, 그 결정은 결국 나의 삶을 반영합니다

계정 정리와 삭제는 단순히 ‘남기느냐 없애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이다. 누군가는 글을 남기고 싶고, 누군가는 사라지고 싶어 한다. 중요한 건 타인의 판단이 아니라, 스스로 정리하는 능동적 결정이다. 내가 살아온 디지털 흔적은 나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할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온라인 계정을 만들고 있다. 그중 일부는 언젠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일부는 사라져도 상관없을 것이다. 디지털 유산은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아주 현실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오늘부터라도 계정을 한 번 돌아보고, 어떤 건 남기고, 어떤 건 지워야 할지 생각해보자. 그건 결국 ‘남겨질 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내 삶에 대한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