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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관리(Digital Legacy)

가족끼리 SNS 계정 삭제를 두고 싸운 이유

by 심미안simmian 2025. 5. 20.

고인의 SNS 계정, 남겨야 할까 지워야 할까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SNS 계정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다양한 플랫폼에 고인의 사진, 글, 생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족들은 이 계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다. 누군가는 그 계정을 보며 고인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사라지지 않는 디지털 흔적이 더 고통스럽다고 느낀다.

현실에서는 SNS 계정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플랫폼에 요청해 삭제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만, 계정 처리 방식은 결국 남은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이 판단이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남겨야 한다’는 입장은 주로 정서적 연결을 중시하고, ‘지워야 한다’는 입장은 사생활 보호나 일상 회복을 중시한다. 이 가치 충돌은 때로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SNS가 고인의 감정, 가치관, 관계까지 모두 담고 있는 개인의 디지털 자서전과도 같기 때문에, 그 기록이 그대로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서 유족은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때 어떤 선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고인의 생전 태도와 유족의 심리 상태, 외부 노출 가능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기술이 남긴 흔적이 정서적 결정을 요구하는 시대, 그 중심에는 SNS 계정이라는 고유한 유산이 놓여 있다.

가족끼리 SNS 계정 삭제를 두고 싸운 이유

인스타그램을 지우자며 다툰 남매

고등학생 딸을 잃은 부모는 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그대로 두고 싶어 했다. 계정 안에는 딸의 셀카, 친구들과의 댓글, 생일 축하 글 등이 남아 있었고, 어머니는 매일 그 계정을 찾아가 댓글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오빠는 계정을 삭제하자고 주장했다. 외부인이 프로필 사진을 무단 캡처해 커뮤니티에 게시하거나, 댓글로 엉뚱한 광고를 남기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남매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SNS 계정 처리 문제로 대화를 끊은 채 1년이 넘게 갈등이 지속되었다. 부모는 계정을 지우는 것이 마치 딸을 완전히 보내는 일처럼 느껴졌고, 오빠는 계정을 남기는 것이 현실을 외면하는 행동처럼 받아들였다. 이 사건은 디지털 유산이 단지 ‘기술적 자산’이 아닌 정서적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인을 중심으로 두고 남겨진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과정은, 때로 상호 존중을 넘어설 만큼 예민해질 수 있다.

 

페이스북 계정 기념 전환을 둘러싼 형제 갈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청년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그의 페이스북 계정 처리 방식을 두고 형제들 간에 큰 갈등이 생겼다. 큰형은 동생의 페이스북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해 두고 싶어 했다. 생전 친구들이 남긴 메시지를 보며 그를 추억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반면 막내는 이 계정을 보존하면 나중에 외부의 관심이나 언론 노출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삭제를 요구했다.

기념 계정은 일종의 ‘추모의 공간’ 역할을 하게 되지만, 실제 운영 권한은 없고, 계정 자체가 외부 검색에 노출되는 만큼 개인정보가 그대로 남는다는 단점도 있다. 결국 유족은 각자의 입장을 담아 플랫폼 측에 상반된 요청을 보냈고, 플랫폼은 “사망자의 사전 설정이나 법적 위임이 없다면 가족 간 합의가 필요하다”며 중립을 지켰다. 이 사례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능이 충분하더라도, 가족 간 정서적 합의 없이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생전에 고인의 의사를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대부분은 고인이 생전에 아무런 의사를 남기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반대로 “내 계정은 기념 계정으로 바꿔주세요”, “사망 후 삭제해주세요”라는 단 한 줄의 문장만 남아 있어도 가족 간 분쟁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유서의 가치다. 몇 가지 계정 목록과 처리 방식을 문서로 정리해 두는 것만으로도, 유족은 고인의 의중을 존중하며 혼란 없이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플랫폼들도 이런 갈등을 줄이기 위해 생전 설정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은 각각 비활성화 관리자, 디지털 유산 연락처, 기념 계정 지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능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 채 생을 마감한다.
더 큰 문제는 ‘죽음을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문화’로 인해, 가족 간에도 이와 같은 대화를 미리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전 설정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질 이들을 위한 가장 실질적인 배려이자 삶을 마무리하는 지혜다. 계정 하나, 사진 하나, 댓글 하나가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생각하며, 스스로 마무리할 줄 아는 태도가 결국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된다.

 

가족 간의 디지털 애도,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SNS 계정은 한 사람의 생애를 반영하는 일기장일 수 있고, 그와의 마지막 대화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덫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억하는 감정에는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누구의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다름을 서로 존중하고, 계정 하나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함께 논의하는 태도다. 디지털 시대의 애도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감정 조율을 포함하는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계정을 삭제한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계정을 남긴다고 해서 아픔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필요한 건 계정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이 아니라, 고인을 중심에 두고 서로의 애도 방식을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이다. 기억을 지우지 않고도 일상을 살아가는 길, 그 중심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선택이 있다.